Dear My Valentine (200214 HBD)

 

 스타리쉬의 전국 투어 일정이 발표된 건 슬슬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한 초겨울의 일이었다. 발표일 바로 전날까지도 투어를 할테니 준비를 하라고만 알려줬을 뿐 세부사항을 알려주지 않았던 사장 때문에, 직접 무대에 오르는 멤버들조차 팬들과 같은 날에 그 일정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본 모든 이가 주목한 날짜가 하나 있었다.

2월 14일, 요코하마 아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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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

 

 진구지 렌은 갑자기 찾아온 어둠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다음 순간, 그를 둘러싼 세상이 온통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생일 축하해!!"

 

 그 순간, 그곳은 오롯이 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운 오렌지색의 불빛과 그를 향한 사랑만이 존재하는 공간이 되었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환하게 빛나는 풍경 때문에, 렌은 초점을 맞추기 위해 눈을 깜박였다. 흐릿한 오렌지빛이 차츰 형태를 찾아갔다. 그것을 들고 있는 수많은 팬들과 멤버들의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렌의 입가에 희미하게 미소가 걸렸다. 렌이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고마워."

 

 그의 짧지만 진실한 답신에 팬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멤버들도 모두 뿌듯하게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여기에서 공연을 할 수 있어서 기뻐. 인생에서 다시는 없을 행복한 날인 것만 같아."

 

 투어 일정이 발표된 날 진구지 렌의 팬들은 일제히 눈물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가 태어난 날, 태어난 도시에서 노래한다고 하는데 어찌 진정할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 역사적인 순간에 나도 함께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품고 경건한 마음으로 추첨을 신청한 뒤 매일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다가 화면에 떠오른 당선이라는 두 글자에 평생 믿은 적도 없는 신에게 감사를 표하며 환호성을 내지른 끝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물론 렌은 그런 자세한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사랑스러운 어린 양들이 목자를 찾아 요코하마 아레나의 지붕 아래로 들어오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이고 이곳에 오지 못한 팬 또한 많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도 최선을 다해 무대에 서리라고 마음먹었다. 자신을 보러 온 이들을 위해, 언제나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푸는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해.

 

 

 진구지 렌은 그야말로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

 

 그런 평을 들은 적이 종종 있었다. 그것이 과찬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그만큼 자신이 잘 해내고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 무척 기뻤다.

 

 렌의 원동력은 실로 간단했다. 나를 사랑해주는 이를 나도 사랑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한 번도 대화를 나눠본 적도, 손을 맞잡아본 적도 없는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의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아는 사람에게도 사랑받은 기억이 별로 없는 렌으로서는 더더욱 그랬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분명 렌이 만났던 사람 중에는 진심으로 그를 사랑했던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렌은 누군가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을 힘이 없었다. 그러나 소중한 동료와 팬들이, 무엇보다도 그녀의 음악이 자신에게 그 힘을 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그 힘을 이용해서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진구지 렌은 그야말로 아이돌이 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다.

 

 

 "오늘은 내 생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발렌타인데이잖아?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고백하는 날이지. 어린 양들은 그러고 싶은 상대가 있어?"

 

 렌이 가볍게 던진 물음에 "당연히 진구지 렌!" "사랑해!!" 등의 우렁찬 대답이 관객석에서 튀어나왔다. 렌이 그것이 재밌었는지 후후 웃자, 사랑 고백은 순식간에 비명으로 바뀌었다. 역시 나는 이 사람들이 좋다. 나를 사랑해주고, 내 사랑을 받아주는 이 사람들과 계속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렇게 생각하고 렌이 말을 이었다.

 

 "이번 솔로 베스트 앨범의 인터뷰에서 잠깐 말한 적도 있지만, 아이돌이 되기 전의 나는 여러모로 누덕누덕한 사람이었어. 누구도 날 사랑하지 않는 것만 같은데 사랑받고는 싶고, 그렇지만 날 사랑해달라고 말할 용기는 없었어. 그래서 사실 발렌타인데이가 생일인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 곳곳에 사랑을 주고받는 사람들로 가득한데, 그 가운데에서 축하받아야 할 나는 정작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해서 너무도 외로워지는 거야."

 

 차분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그런 말을 하는 렌의 모습에 팬들의 눈시울이 하나둘 붉어졌다. 멤버들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 요코하마는 나의 고향이지만… 요코하마에는 그런 시절의 기억밖에는 없어. 하지만 그래서 더욱더 다행이라고 생각해. 그 잿빛 기억 위로 이렇게나 행복하고 반짝이는 추억을 덧칠할 수 있어서."

 

 렌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도 눈앞의 오렌지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렌은 웃으며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안도의 한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가진 아픈 기억이 그 숨결과 함께 허공으로 흩어져 사라졌다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오늘, 여기에서 나와 함께해줘서 진심으로 고마워.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너희의 사랑에 보답하고 싶어. 다음 곡은 우리의 발렌타인 선물이라고 생각해줘."

 

 마침내 렌이 말을 끝내자 팬들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자신의 사랑이 소리가 되어 무대 위의 렌에게 닿기를, 그가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시에 렌의 양옆에 서 있던 오토야와 쇼가 그에게 달려들었다. 오토야는 렌의 머리칼을 마구 쓰다듬어서 헝클어뜨렸고, 쇼는 렌의 등을 팡팡 소리가 나도록 두들겼다. 그만두라며 팔을 내젓는 렌은 어린아이 같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렌 치사해! 멋있는 말 전부 독차지하고!"

 "그래! 생일이라고 들떠서 말이야!"

 "푸후후, 두 사람은 생일이 아니어도 늘 들떠 있잖아. 나도 가끔은 들뜨게 해줘."

 "잇토키, 쿠루스, 그쯤 하도록 해라. 의상과 헤어가 망가지지 않나."

 "그래, 생일이니까요. 하루 정도는 봐주도록 합시다."

 "오늘의 주인공이니까요!"

 "생일이라서 들뜬 렌군도 귀여워요~!"

 "와앗, 나츠키?!"

 

 금세 시끌벅적해진 일곱 멤버를 팬들이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던 사이, 나츠키가 양팔을 벌려 렌과 오토야, 쇼를 와락 끌어안았다. 당황한 오토야와 쇼는 소리를 질렀지만 렌은 여전히 천진난만한 미소를 띤 채 자신의 팔도 힘껏 뻗어 그에 답했다. 이에 세실이 "즐거워 보여요!" 라고 외치며 달려들고, 희미한 미소를 띠며 지켜보던 마사토를 오토야가 "마사도!" 라면서 잡아당기자 중심을 잃은 마사토가 반사적으로 토키야의 옷소매를 붙잡아 그까지 끌려 온 것은 순식간이었다. 결국엔 일곱 멤버 모두가 서로 부둥켜안고 넘어질 듯 휘청휘청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 한가운데에 파묻힌 렌은 너무 웃어 눈물마저 맺힌 채 그들의 무게를 받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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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상치 못한 포옹의 장이 열린 토크 타임이 끝나고, 멤버들은 다시 공연을 이어 나갔다. 그들이 노래하는 내내 요코하마 아레나는 발렌타인이라는 날에 걸맞은 넘쳐흐르는 사랑으로 가득 찼다.

행복한 시간은 눈 깜짝할 새에 흘러가서 공연은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조명이 전부 꺼지고 멤버들의 모습은 무대 아래로 사라졌지만, 팬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작별 인사 대신에, 그들의 이름을 할 수 있는 한 가장 크게 부르며 앵콜을 외쳤다. 

 

 "앵콜 고마워~!"

 

 너무도 길게 느껴진 잠깐의 공백을 깨고, 활기찬 감사 인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일곱 명을 보자 팬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팬들이 그들이 입고 있는 의상이 한 번 본 적이 있는 흰 정장이라는 것을 눈치챈 순간 울려 퍼지기 시작한 무지갯빛의 반짝이는 노랫소리가 환호성과 섞여 하모니를 만들어냈다.

 

 "별이 가득한 하늘로 여행을 떠나자,"

 "무지개를 사다리 삼아서!"

 

 실제로는 몇 분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곳에 있는 이들에게는 마치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작별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슬픔은 느낄 수 없었다.

 

 "다들, 진심 러브 킹덤 공연 때와는 다른 구성이라서 놀랐을까?"

 "그때는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었지만, 오늘은 반대로 최후의 곡으로 부르기로 했지."

 "이건 모두가 의논해서 정한 순서인데요, 그 이유를 혹시 알고 있나요~?"

 

 질문을 받은 팬들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지만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들의 입으로 직접 듣고 싶었다.

 

 "아실 수도 있겠지만, '프렐류드' 는 서곡이라는 뜻입니다. 저희는 이 노래를 '꿈의 서곡' 이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함께하는 이 꿈만 같은 시간은 곧 끝나겠지만, 그게 영원한 작별을 뜻하는 건 아니잖아?"

 "공연장 밖으로 나가도 추억은 가슴에 남아있지! '꿈의 서곡' 이란 바로 그런 뜻이다!"

 "지금부터 새로이 시작될 이 꿈을, 다음에 다시 만날 날까지 부디 소중히 간직해주세요!"

 

 세실이 말을 마치자 간주가 끝나고 그들이 다시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그곳은 더는 요코하마 아레나가 아니었다. 그들의 노래가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별로 가득한 밤하늘이었으며, 무지개가 떠오른 맑은 아침 하늘이었고, 동시에 찬란하게 빛나는 음악과 노래의 왕국이 되었다.

 

 

 그 안에서 일렁이는 무지개색 빛을 바라보고 소중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 모든 장면을 가슴에 새기던 진구지 렌은 문득 생각했다.

 오늘, 여기에서 태어나서 정말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