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나만의 거야.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 그게 만약 너라고 해도. 나에게 버팀목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그는 그렇게 말했다.

웃기지 마, 바보야. 지금 네가 어떤 표정인지는 알아? 기댈 곳이 얼마나 필요해보이는지 아냐고!
나는 그렇게 쏘아붙일 수 없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그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힘이 들어서,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정 따위는 사양할게. ’

아냐, 이건 동정이 아니다. 그런 얄팍한 마음이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아마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동정이라면 네 마음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쉽게 다가설 수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 나는 내 행동 하나하나에 돌아올 네 대답이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이렇게 서있잖아.
너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 나에게 기대주었으면 해. 너를 알고 싶어. 그 푸른 눈동자 속 호수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는 마음을 듣고 싶어. 누구에게도 말해주지 않는 네 상처를 들여다보고 보듬어줄 수 있는 사람이 나였으면 해. 한번 떠올리기 시작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람들. 

그렇다면, 동정이 아니라면, 뭔데?
왜 너는 저 애를 돕고 싶어?

누군가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 그러면 나는 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들쑤시고 싶은 것도 동정하는 것도 아니라면, 이유는 한 가지뿐이기에. 그리고 그 이유는 지금 입에 담아서는 안되는 감정이기에.

아야메가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길래 물어봤더니, 좋아하는 아이돌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도넛을 구웠다고 했다.

“본인한테 줄 수 있는 거야?”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을 내뱉자 그가 몸을 움찔 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니, 샤이닝 사무소는 조공 금지야.”
“그러면 아야가 다 먹는 거야?”
“나도 먹고, 친구들도 나눠주고… 너도 먹을래?”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진짜로? 단 거 안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먹어, 그래도.”

아야메가 의외라는 듯 잠깐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하고 다시 도넛의 데코레이션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사진 찍으려고 이 굿즈들을 다 들고 온 거야?”

그 순간, 아이싱으로 유니언잭을 그리던 손이 파르르 떨며 궤도를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옆에서 배열을 도와주던 시부야가 옆구리를 쿡 찌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하하, 렌, 오늘 질문이 많네… 레코딩 때나 그렇게 좀 해보지…”
“조용히 하고 도울 거 생기면 도와주기나 해!”
“아니, 나는 그냥…”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라는 뒷말은 둘의 등쌀에 떠밀려 흐려졌다. 결국 나는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아 반대편에 진녹색 성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얌전히 지켜보게 되었다.

모델 일을 하면서 몇 번 만난 적도 있고 지금은 아이돌 지망생으로서 이곳에 있다지만 사실 아이돌이란 직업에 대해 잘 아는 편은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부러 찾아보지 않았다는 쪽에 가깝다. 보고 있으면 동경하게 되니까. 화면 너머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고 마니까.

하지만 사오토메 학원에 들어온 뒤로는 좋든 싫든 아이돌에 대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그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는 누구도 제대로 가르쳐주는 법이 없었다. 왠지 모르게 그것이 궁금해진 나는 주변 학생들 -주로 아야메나 꼬맹이쨩- 의 모습을 보며 어깨 너머로 배우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오늘도 이렇게 화려하게 생일을 축하하는구나, 하며 지켜본 것뿐이었는데, 아무래도 아야메는 그런 자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듯했다.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응? 뭐라고 했어?”
“아무것도… 그쪽 벽에 ‘KOTO’가 비뚤어졌다고.”
“어, 진짜다… 좀 더 빨리 말해주지 그랬어!”

의자에 올라가서 비뚤어진 풍선을 고치려던 그가 문득 이쪽을 돌아보았다. 딱히 시키지 않았어도 도울 생각이었기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야메의 곁에 섰다. 팔을 쭉 뻗어 풍선을 바로 붙이면서 슬그머니 옆을 쳐다보면 양뺨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그가 나를 마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나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가볍게 뛰어서 의자에서 내려온 뒤 아까 완성한 도넛을 쟁반에 예쁘게 담아 테이블 가운데에 올려놓는 아야메를 빤히 보고 있었다. 그는 이제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인형과 도넛, 장난감 자동차가 가장 조화롭게 보이는 배치를 찾는 일이었다. 허리를 숙이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아야메를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한편으로는 살면서 딱 한 번, 화보 촬영장에서 지나가듯 본 적이 있는 저 갈색 머리의 남자에게 약간의 질투심도 들었다.
내가 아이돌이 된다면 아마도, 오렌지색일까.
오렌지가 올라간 케이크를 준비하고 풍선을 벽에 붙이고 장미를 몇 송이나 놓을까 고민하는 아야메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내가 아이돌이 된다면, 너는 나에게도 그렇게 웃어줄까? 나를 위해서도 그 뺨을 붉혀줄까?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노래가 부르고 싶어졌다.

진구지 렌은 물에 잠기는 꿈을 꾸었다.
처음 깨달았을 때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수면으로 올라가고자 발버둥쳤으나 오히려 더 아래로 가라앉고 말았다. 처음 느끼는 감각에 덜컥 두려워졌다.
푸른 물은 맑고 투명해서 햇살이 그대로 비쳤다. 서서히 그는 물이 따갑지도 않고 짭조름하지도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는 눈을 깜빡여도 아프지 않았고 입을 열어보아도 폐까지 물이 들이차지 않았다.
진구지 렌은 사랑받는 법을 몰랐다. 만약 그가 그것을 한번이라도 느껴보았다면, 그 공간을 가득 채운 것이 물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테다. 대신 그를 감싸안은 것은 부드럽고 따스하고 커다랗고 무거운, 심장을 상냥하게 적시는 사랑이었다.
렌은 눈을 감았다. 이런 꿈을 꾸는 이유도 영문도 아직은 몰랐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타치바나 아야메의 사랑은 크고 밝다.
그녀가 받아온 사랑은, 따라서 나누어 줄 줄 아는 사랑은 그것밖에는 없었다. 화목한 가족과 사이 좋은 친구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반짝이는 이와 주고받은  사랑. 티끌 한 점 없이 맑고 올곧게 쏟아붓는 사랑.
아무래도 소년은 사랑받고 싶어하는 듯했다. 그래서 소녀는 기꺼이 사랑을 주었다. 
그러나 양지에서만 살아온 사람은 태양이 얼마나 찬란한지를 모른다. 어둠에 익숙해진 사람을 갑자기 빛 아래로 잡아끌었다가는 눈이 멀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다.
타치바나 아야메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것은 이를테면, 목이 말라 한 병의 물을 원하는 이를 샘에 빠뜨려버리는 일과 같았다. 그래도 물에 빠진 이는 처음에는 당황하여 몸부림치다가, 점점 헤엄치는 법을 익혀나가리라. 마침내는 흐르는 물속에서 한가로이 유영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그의 방식은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2021.03.09

농구... 농구하는 에스클아야메 보고 싶다... 여름청춘고딩...

운동은 싫어한다고 말했지만, 한번 승부욕이 붙으면 금방 열중하는 타입인 아야메는 어느새 자연스럽게 소년들 틈에 녹아들어 있었다. 땀방울을 흩날리며 코트를 가로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렌은 몰래 웃음을 터뜨렸다.

제대로 던지지도 못하는 주제에 열정을 불태우며 패스를 외친다. 한없이 서투른 몸짓과 상반되게 공을 좇는 눈빛은 진지하다. 렌은 그 옆모습에서 한 소년을 본다. 한없이 서투르고 어렸지만, 무언가 해내보이겠다는 치기로 가득 찼던 소년을.
그때, 나도 저렇게 보였을까?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내고, 렌은 있는 힘껏 공을 던진다. 아야메의 손으로 날아든 공이 잠시 뒤 포물선을 그리며 골대의 그물을 힘차게 흔든다. 소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가득 찬다.

뛰어올라 하이파이브를 하는 아야메는 분명, 돌아가는 길 내내 덥다고 투정을 부릴 것이다. 내일은 다리가 아프다고 하소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다음 날 또다시 함께 하지 않겠냐고 묻는다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래서 렌은 아야메를 좋아했다.

2020.10.08

열살 렌봇쨔마 안고 저택 뛰쳐나와서 놀러가고 싶다 같이 사람 많은 거리에 놀러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고 등 따순 데에서 렌게님 콘서트 블루레이 보고 싶다...
너무 귀엽지... 도련님 데리고 놀이공원 가고 싶다 입구 들어갈 때까지 나한테 경계 안 풀고 커다란 가방 두 손으로 꼭 쥐고 있는데 들어가서 펼쳐진 광경 보고 멍하니 눈만 깜박이는 렌 머리 쓰다듬어주고 싶다...

좋아 어른 아야메랑 열 살 렌이랑 놀이공원 놀러가는 걸로 하자 개연성은 사장님이 만들어주실 거야 솜사탕 사주니까 안 그런 척하면서도 눈 반짝반짝 빛내는 렌 보면서 후후 웃고 아야메가 가방 받아서 로커에 넣어두고 오면 가만히 앉아서 솜사탕 먹고 있는 렌 보고 싶다...
같이 토끼 머리띠 쓰고 사진도 찍고... 커피컵 타고나서 너덜너덜해진 아야메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렌(얘가 신나서 무자비하게 돌렸음) 그러면서도 롤러코스터는 꼭 타야 한다고 걸어가는 아야메 보고 아까부터 기대했다고 말하면서 싱긋 웃는 렌...

꼭 퍼레이드랑 불꽃놀이까지 보고 가야 해...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노래에 맞춰 춤추는 댄서들을 태운 기차가 지나가는 광경과 그 위로 펑펑 터지는 색색깔의 불꽃을 보고 잔뜩 신나있는 렌에게 "네 무대는 더 멋있었어." 라고 속삭이는 아야메의 목소리는 퍼레이드 소리에 가려서 들리지 않겠지만 "뭐라고 했어요?" 라며 아야메를 돌아본 렌을 한번 더, 마지막으로 세게 꼭 안아주면서 "네가 즐거워보여서 기쁘다고 했어." 라고 대답해줄 거야

…있지 렌, 오늘 재밌었어?
응, 엄청.
다행이다. 나도 엄청 재밌었어.

렌, 말했잖아. 나는 이제 가야 한다니까. 렌도 집에 가야지? 죠지 씨가 기다리시잖아.
메일 주소도 이름도 안 알려줬잖아.
아하하, 그런 사정이 있다니까…
어른들은 맨날 그렇게 말해!

……그럼, 다시 못 만나는 거야?
아냐. 만날 수 있어. 약속할게, 꼭 만날 거야. 네가 오늘 있었던 일을 잊어버려도, 너는 나를 만날 거야.

그러고도 한참을 안 놓아주다가 결국 소매를 살짝 놓아주고... "착하기도 하지." 라는 한 마디를 듣고 눈물을 꾹 참으면서 아야메한테 손 흔드는 렌

2021.05.31

저녁놀에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유원지는 노스탤직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지. 눈을 감고 있으면, 잠깐이나마 아이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그리고 반 년 뒤 등장한 샤이닝 라이브 유원지 가챠 렌 스알 대사...